한나라 부터 위진남북조 수 당 송에 이르기까지 과거제의 변화 알아봐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나라부터 시작해서 위진남북조 수, 당, 송에 이르기 까지의 과거제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팅을 보면 알 수 있겠듯이 옛날의 과거제의 폐단을 점점 고쳐 나가는 과정에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나라에는 향거리선제라는 제도를 도입합니다. 즉 향론에 의거하여 향품을 정하는 제도이죠. 여기서 향론이란 향촌 즉 시골에서 이 사람이 좋다 저 사람은 착실하다 등의 소문을 듣고 중앙에서 천거해서 등용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좋은 말은 돈 있거나 소위 백 있거나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등용되는 제도이죠. 그래서 지방 호족에게 유리한 제도이고 호족들이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들은 후한말에 환관세력들과 결탁해서 매관매직과 같은 부정부패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로 인해 황건적이 일어나게 되고 한나라는 위나라 문제에게 왕위를 양위함으로써 망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위진남북조 시대때 구품구정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2대황제 문제때 상서 진군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서기 220년경 왕조의 교체와 동시에 시행되었습니다. 이것은 각 군 출신 관리들을 등용하여서 그 관리들이 자질이 있는 사람들을 조사를 해서 관품을 매기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향품을 정하는 중정이 막강한 권력을 가졌음에도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재능보다는 사사로운 감정과 뇌물의 액수에 따라서 향품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초로 과거라는 시험을 통해서 관리를 뽑은 나라는 수나라입니다. 하지만 이는 시행일자가 일정치 않고 참가자를 미리 정하고 정치와 행정에 관하여만 묻기 때문에 과거라고 불리기가 어렵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당나라에서는 이를 개선하여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일단 명망있는 자를 현에 위임해 시험을 치르게 하고 주의 장관이 재심하여 합격한 자를 매년 10월 공물과 함께 올려 보내도록 한다는 조령이 내려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향시라는 것인데요. 그리고 또한 622년에는 자진하여 참가하는 것을 허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공거라는 감독관이 미리 공지되어서 뇌물수수 혹은 청탁이 빈번하였고 이로 인해서 부패하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송나라때는 부정시험을 막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절도사의 난을 통해서 무장세력으 무서움을 알게 된 송나라는 아주 강력한 문치주의를 채택하게 됩니다. 송대는 공천을 금지하고 관료의 자제중 급제한 자가 있으면 재시험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황제가 직접 시험을 감독하여 관료를 선불하는 전시를 시행했습니다. 이후에도 미봉 즉 수험자의 이름과 관직 출신가문등을 가려서 체점을 하고 등록제도라는 것 그 이후에 글씨체를 보고 시험자를 유추해 내어서 한 사람이 과거 수험생의 시험지를 모조리 배껴 쓴 후 체점하는 제도로 완성되어 갑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